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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르웨이의 숲

노르웨이의 숲

솔직히 이야기하자면 “노르웨이의 숲“보다 내게 더 익숙한 타이틀은 “상실의 시대“이다. 고등학교 2학년 겨울방학이었나 도서대여점에서 처음 접한 뒤로 지금까지 적어도 열몇번은 읽은 것 같다. 그중 거의 대부분 군대에서 할일 없을때 시간 때울려고 읽은 것이긴 하지만 그만큼 좋아하는 소설이기도 하다.

그리고 예전부터 가지고 있던 꿈이 바로 “노르웨이의 숲”을 원문(일본어)으로 읽는 것이었다. 아마 일본에 오게 된 이유의 6,70%는 이 소설에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일본에 와서 6,7개월정도 되었을 무렵 상,하로 나누어져 있는 문고본을 사서 사전 찾아가며 처음 읽기 시작했는데 한 5,60페이지 정도 읽고 포기했었다. 일본어가 아직 미숙했던 때라(지금도 썩 잘하지는 못하지만..;;) 한 두세 페이지 읽으면 지쳐서 제대로 읽을 수가 없었다. 내용을 이해하기 보다는 일본어 단어에 헤매기 쉽상이었다.

항상 가방속에(그러고보니 정말 의식하진 않았지만 3년정도 계속 가방안에 이 책을 넣고 다녔었다!) 있었지만 거의 잊고 있었는데 최근 다시 한번 도전을 해봤다. 3년전에는 그렇게 어렵게 느껴지던 내용이 이제는 어느정도 수월하게 잘 읽힌다.

예전에 한국에서 번역본을 읽을때는 느낄수 없었던 부분들을 원문에서는 많이 느낄 수가 있었다. 우리나라 말로 표현 할 수 없는 일본어 특유의 독특한 뉘앙스라던지, 말투…특히 미도리(緑)의 말투는 최근의 젊은이보다는 5,60대 아줌마 세대의 느낌이 난다. 나오코는 조금 딱딱한 느낌이고…와타나베는 생각보다 쿨하게 느껴지는 말투가 아닌지라 조금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한국어로 읽었을때는 굉장히 쿨한 느낌이었는데 말이다. 그만큼 내가 나이가 든건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무엇보다 신기한 느낌은 예전 일본을 전혀 모르던 시절에 머리속에 그려진 소설의 이미지에 현재 토쿄의 이미지와 과거 토쿄의 이미지가 섞이는 부분이다. 이렇게 상상했었지만 실제로는 저런 느낌이었을거라며 머리속 이미지를 수정해 나가며 소설을 읽는 것도 새로운 경험이었다.

그렇다고 해도 가장 중요한 “노르웨이의 숲”을 읽으면서 느꼈던 감동은 달라지지 않았다. 한국어든 일본어든 말이다.

wikipedia에 의하면 무라카미 하루키(村上春樹)도 이 “노르웨이의 숲”이라는 제목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고 한다. 다른 소설의 경우에는 먼저 제목을 정하고 그 다음 소설을 써내려가는데 이 소설의 경우에는 처음에 “비가 내리는 정원(雨の中の庭)”이었다고 하는데 도중에 “노르웨이의 숲”이라는 제목으로 바꼈다고 한다. 중간에 어떤걸 제목으로 할지 망설이다가 부인에게 물었더니 “노르웨이의 숲”이 좋다고 하여 그대로 제목이 되었다. 실제로 무라카미 하루키는 비틀즈보다는 짐 모리슨의 도어즈의 열렬한 팬이었다고 한다.

3 Responses to “노르웨이의 숲”

Comments Feed

  1. gming Says:

    와아 ;ㅅ; 저 하루키 팬인데.. 상실의 시대도 너무 잘 읽었고..
    저도! 엔마님처럼 원서로 읽고 싶어요!! 으어엉 ㅠㅠ 이번 일본 여행 가서도.. 일본어 못하는게 어찌나 한스럽던지.. 슬펐어요.. 으

  2. 하씩씩이 Says:

    うちのかみさんとまったく同じですね。

  3. nmind Says:

    gming님
    gming님도 하루키 팬이셨군요:-) 각 언어마다 특징이 있기에 완벽히 동일하게 번역하는 건 불가능한 것 같습니다. 그래도 그렇게 크게 다르지는 않습니다만 색다른 느낌이 있더군요.

    하씩씩이님
    そうですか!奥様も!今度ノルウェイの森オフー会でもやりまし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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